붓,  색  그리고  그림             

    작가는  색을  잡을  수  없다. 
    물감에  한정해서  얘기해도  처음  칠했던  색깔이  작업의  마지막  단계까지  유지되지  않을때도  있으며,  갈라지고  떨어져  그림의  일부로  보이지  않고  물감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그림에서  색은  연결되어  존재한다.  가끔  빛이  없는,  인공광,  자연광  모두  없는  공간을  상상한다. 
    실제로  찾기  힘들  것이다.  최소한  달  하나는  떠있을  테니까.
    만약  그런  공간이  있어  모두  같은  색을  띤다면  그건  어떤  멈춤에  가까울  것  같다.
    여러가지  색에  부여된  의미는  진리이기  보다  순간적인  의도라  생각한다.
    우리  삶의  빛은  구름이  지나가고,  빌딩에  가려지고,  빗속에  숨는  순간들의  불규칙적인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상과  자연에  닿으면  공간이  되고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어느  시간,  장소를  떠올려 본다.  그것을  그린  그림과  사진까지도.
    그  안에서  색은  특정한  간판일  수  없고,  섞이면서  옅어지는  때로는  미래에  다시  나타나는  상념같은  것이다. 
    물감은  붓과  함께  움직이기에  정지된  의미에서  멀어진다.
    붓  끝의  마찰,  팔의  떨림까지  담겨있는  미끄러지면서  부딪치는  가능성에  대한  작가의  믿음이다.            /    2024.11.1

시간의  공간,  호숫가에  앉아서
                                           _ 2011~2018

    가  보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생각과  판단들에  지금  보는  것이  무엇인지  더  알고  싶어졌다.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인데,  해가  드리우고  그늘이  지는  때에  따라  달라지는  가로수의  모습  같은  삶의  단면들에  분명한  무언가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물속에서  회전하는  생명체처럼,  자연스럽게  달라지는  주변을  받아들이는  유연함이  필요했던  것일까?
    바람이  불고  잔물결이  일렁이는  호숫가에  앉아서,  일상과  주변의  풍경이  잘게  부서지고  변하고  반짝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직  남아있는  울림이  다가오는  풍경과  부딪히는  순간까지  담아보고  싶었다.
    그것이  무엇인진  잘  모르겠지만  변하는  모습  그대로  그림으로  그리면,  머리로는  다  헤아릴  수  없는  세상의  부분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직  물음표가  없어지지  않았는데  지나가버리는  것들이,  어쩌면  기억하고  싶은데  떠오르지  않는  지난  밤  꿈  마냥  스쳐가는  순간들을  계속  잡고  싶었나보다.
    이렇게  순간의  느낌을  천천히  쌓아올려  그리는  과정은,  시간으로  경험의  균형점을  가늠해보는  시도였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캔버스에  드러나는  것은,  마음  안에서만  돌아다니던  미지의  무엇이  하나의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이  작업의  동기이기도  했던  '내가  보는  것은  객관적  사실일까?  나의  시선일까?' 라는  질문은  세상과  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호숫가에  바람이  불면,  물결  사이에서  또  다른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수면과  세상의  모습이  겹쳐지고  흩어지며  움직이는  순간들이  시간의  거리를  지나  새로운  공간감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                            /    2019.12.22   

( 이  시리즈의  하나인  '흐르는  시간 (2013~2017)'은   '화무십일홍'을  모티브로  진행한  작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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